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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체육사 한국체육사 4번 문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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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수린이
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6-04-23 16:47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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■ 석전에 대한 기록이 있는 역사서들

  • 636년 『수서(隋書)』 - 위징(魏徵) 등
  • 659년 『북사(北史)』 - 이연수(李延壽)
  • 945년 『구당서(舊唐書)』 - 유후(劉昫)
  • 1060년 『신당서(新唐書)』 - 구양수 등

 

■ 문제 오류를 주장하는 측의 자료를 찾아봄 

 

북위의 역사를 다룬 위수(魏收)의 『위서(후위서) - 554년』에서 석전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자료를 찾아봄. 

 

敖至其所居平壤城,訪其方事,云:遼東南一千餘里,東至柵城,南至小海,北至舊夫餘,民戶參倍於前。魏時,其地東西二千里,南北一千餘里。民皆土著,隨山谷而居,衣布帛及皮。土田薄塉,蠶農不足以自供,故其人節飲食。其俗淫,好歌舞,夜則男女羣聚而戲,無貴賤之節,然潔淨自喜。其王好治宮室。其官名有謁奢、太奢、大兄、小兄之號。頭著折風,其形如弁,旁插鳥羽,貴賤有差。立則反拱,跪拜曳一脚,行步如走。常以十月祭天,國中大會。其公會,衣服皆錦繡,金銀以為飾。好蹲踞。食用俎几。出三尺馬,云本朱蒙所乘,馬種即果下也。

 

아래는 번역기 요청하여 번역한 내용입니다. 

 

백성은 모두 토착민으로, 산골짜기를 따라 살며 베·비단·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다. 땅이 척박하여 양잠과 농사만으로는 스스로를 부양하기 부족하므로, 그 사람들은 음식을 절제한다.

풍속은 음탕하여 가무(歌舞)를 즐기고, 밤이면 남녀가 떼 지어 모여 어울려 노는데 귀천의 구분이 없다. 그러나 깔끔하고 청결함을 스스로 즐긴다.

왕은 궁실(宮室) 짓기를 좋아한다. 관직 명칭으로는 알사(謁奢)·태사(太奢)·대형(大兄)·소형(小兄)의 호칭이 있다.

머리에는 절풍(折風)을 쓰는데, 그 모양이 변(弁, 고깔 모양 관)과 같고 옆에 새 깃털을 꽂으며, 귀천에 따라 차등이 있다. 서 있을 때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으고, 무릎 꿇어 절할 때는 한쪽 발을 끌며, 걸음걸이는 달리는 것처럼 빠르다.

항상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, 나라 안에서 큰 모임을 연다. 공식 모임에서는 의복이 모두 금수(錦繡, 수놓은 비단)이고 금은(金銀)으로 장식한다.

쪼그려 앉기를 좋아하고, 음식은 조궤(俎几, 제례용 상)를 써서 먹는다.

키가 석 자(三尺)밖에 안 되는 말을 산출하는데, 본래 주몽(朱蒙)이 탔던 말이라 하며, 이 말의 품종이 곧 **과하마(果下馬)**이다.

 

 

이를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풀이를 진행해보면


① 석전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중국 수나라(581-618) 역사서인 『수서(隋書)』(636년 간행)의 고구려 관련 동이전(東夷傳)에서 발견된다. 

    척석희 항목에서도 『수서(隨書)』「고구려전(高句麗傳)」의 기사 "해마다 연초에 패수 가로 모여 놀이를 하는데... 군중들은 좌우 두 편으로 나뉘어 물과 돌을 뿌리거나 던지고 소리치며 쫓고 쫓기기를 두세 차례 하다가 그친다" 가 석전의 최초 기록으로 확인.


② '유희적 성격의 무예' 항목에서 조선 전기의 무예 중에서 유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무예라면 돌싸움 곧 석전희(石戰戲)를 들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, 고려사 관련 기록에서 1374년(고려 공민왕 23)에 격구와 석전놀이[石戰戱]를 금하였다고 한다. 또한 『고려사』에는 1345년(고려 충목왕 1) 단오 때 척석희(擲石戱)를 금지시켰다는 기록도 있어, '석전희'와 '척석희' 모두 고려사에 등장하는 용어.


③ 『삼국사기』 무관조에는 신라의 부대로서 사설당(四設幢)이 있으며, 이 부대에는, 돌을 발사하는 투석기를 다루는 투석 부대인 석투당(石投幢)으로 편제되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.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석투당은 신라시대의 군부대로 이른바 사설당(四設幢)의 하나로, 전투 때 돌팔매질을 특기로 하거나 돌을 날려 보내는 병기를 다루던 부대이다. 소속군관으로는 법당주(法幢主) 12인, 법당감(法幢監) 12인, 법당화척(法幢火尺) 18인을 두었다고 명시되어 있음.


④ 『무예도보통지』에는 「척석희(擲石戲)」로 표기되었다. 는 오답!

『무예도보통지』(1790, 정조 14년)의 수록 무예는 다음 24기가 전부입니다:

『무예도보통지』에는 장창(長槍)·죽장창·기창(旗槍)·당파(鏜鈀)·기창(騎槍)·낭선(狼筅), 쌍수도(雙手刀)·예도(銳刀)·왜검(倭劍), 제독검(提督劍)·본국검(本國劍)·쌍검·마상쌍검(馬上雙劍)·월도(月刀)·마상월도·협도(挾刀) 및 등패(藤牌)의 요도(腰刀)와 표창(標槍), 권법(拳法)·곤봉·편곤(鞭棍)·마상편곤·격구(擊球)·마상재(馬上才) 등 총 24가지의 기술이 수록되어 있습니다. 『무예도보통지』에는 석전(石戰)이나 척석희(擲石戲)가 수록되어 있지 않고, 이 책은 군용 전투 무예 24기를 다루는 실전 훈련서이며, 민속놀이 성격의 석전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. '척석희' 용어가 실제로 등장하는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:


『고려사(高麗史)』 — 충목왕 1년(1345), 공민왕 23년(1374) 기록

『조선왕조실록』 — 태조, 태종, 세종, 명종 등 기록

『동국세시기(東國歲時記)』(1849, 홍석모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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